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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sy는 정치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익명의 거리 예술가입니다. 그는 1990년대 영국 브리스톨에서 스텐실을 기반으로 한 그라피티로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Banksy의 정체성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그는 계속해서 사회적 규범과 기대에 도전을 멈추지 않는 예술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그에 관한 정보와 그의 작품과 작품설명 그리고 그의 작품틍징, 인기비결을 요약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명수배자가 된 뱅크시에 대한 그의 통쾌한 생각을 들어보겠습니다!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
90년대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주로 늦은 밤 시간대, 빠르게 작품을 그리고 사라지기 때문에 그를 실제로 보기는 힘듭니다. 또 항상 변장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진짜 얼굴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 뉴욕에서는 지명수배자로수배 중이기도 합니다. 로버트 뱅크시(가명)는 1974년생 백인 남성이며, 어릴 적 한국나이로 11살때 교내 폭행 사건에 연루됩니다. 사건에 전혀 가담하지 않았지만, 주동자들이 입을 맞춰 뱅크시에게 덮어 씌운 것입니다. 뱅크시는 본인의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머니는 "잘못을 인정할 용기도 있어야 한다. 인정하지 않는 너의 태도는 역겹기까지 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뱅크시는 학교와 집 안 모두에서 입을 다문 채 지냅니다. 이것도 잠시, 이후 퇴학까지 당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뱅크시가 2001년 자비로 낸 첫 책, "벽돌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Banging Your Head Against a Brick Wall"에 나와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뱅크시는 이후, 중학교 때부터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 그라피티에 관심을 가지며 그라피티 아티스트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그라피티는 자신의 이름을 거리에 그려내는 문화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를 '태깅'이라고 하는데, 태깅은 지하철 열차, 건물 벽면, 굴다리 등 도시 곳곳에 새겨졌습니다. 이를 막으려는 단속이 시작되었지만, 밤이나 새벽 빠르게 그림을 그리고 도망가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를 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 학자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를 들어 "박탈당한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전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뱅크시는 어린 시절 겪은 부당한 일로 방황을 거치며,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을 싹틔웠습니다. 그리고 이 저항 정신을 단순한 피해의식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더 세밀한 표현 방식을 다듬어 나가게 됩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위트 있게 그림에 배치했습니다.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금세 많은 팬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풍선과 소녀", "꽃을 던지는 사람" 등이 있습니다.
뱅크시 작품 특징
1) 반전성향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방탄조끼를 입고있고, 동시에 총구에 겨눠진 모습입니다. 이 그림은 팔레스타인 장벽에 그려져 있고, 1967년 이후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군대가 점령당했고, 2002년에는 아예 장벽까지 세워지며 세상과 차단되었습니다. 이는 국제법상 명백한 불법입니다. 이 장벽은 베를린 장벽보다 세 배나 높고, 길이는 700 킬로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뱅크시는 팔레스타인을 들어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이라고 언급하고, 이 장벽에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이야기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그림들입니다. 이 그림들은 단순히 메시지를 '광고'하기보다, 직관적이면서 위트 있게 주제를 꼬집고 있습니다.
2) 약자보호
뱅크시는 난민, 기아 문제에 대한 작품도 자주 만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을 작품에 자주 활용하곤 했는데, 이 작품의 아이는 버거킹 종이 왕관 모자를 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버거킹은 패스트푸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인류 비만화에 기여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징이 담긴 모자를 쓴 기아의 모습은 아이러니를 강조합니다. 뱅크시는 평소, 작품과 함께 간단한 한줄평을 남겼는데, 이 작품 아래에는 이런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때로는 내가 먹던 두 번째 애플파이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이 너무나도 역겹게 느껴진다."
3) 권위 도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침팬지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품 주변에 영국 국기의 컬러를 원 형태로 넣고, 왕관과 액세서리를 더해 엘리자베스 여왕임을 암시했습니다. 뱅크시는 이 작품에 이런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는 재능이나 노력에 의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단순히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4) 도둑 전시
이후 뱅크시의 저항정신은 미술시장으로 뻗어나갑니다. 만약 배우가 영화계를 혐오하고, 모델이 패션계를 혐오한다고 하면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뱅크시는 예술가입니다. 대중을 상대로 더불어 그라피티로 얻은 팬덤도 등에 얹고 있었습니다. 뱅크시는 미술시장의 지나친 엘리트주의와 권위의식, 허상을 비판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테이트, 루브르, 모마 같은 유명 미술관에 '도둑전시'를 진행하죠. 각 미술관에서 주로 선보이는 작품의 특징이나 콘셉트를 고려해 작품을 몰래 걸었습니다.
5) 파괴예술
미술시장에 저항한 뱅크시의 작업 중, 원래 제목은 "Girl with Balloon"이었지만, 작품이 낙찰됨과 동시에 뱅크시는 작품을 갈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퍼포먼스 이후, 뱅크시는 작품 보증서에 새로운 제목을 새겼습니다. "Love is in the Bin". 낙찰 당시 가격은 약 15억 원이었지만, 현재가치는 3조 2,650억 원으로 여겨집니다. 그간 뱅크시를 비난하던 사람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동료 그라피티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평론가들 중에서도 뱅크시를 혐오하던 세력이 있었습니다. 뱅크시의 예술세계가 지나치게 쉽고 단순하다거나, 거리 예술 자체를 예술로 보지 않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이 퍼포먼스에는 경외를 표하고, 인정했습니다.
15억 원 그림을 찢어버린 예술가, 뱅크시는 누구인가?
작품 인기비결
1) 스탠실 기법
종이에 그림을 그린 후, 모양대로 오려서 위에 스프레이를 뿌리면 바로 그림이 나오게 하는 방식입니다. 본인의 작업실에서 스탠실 판을 만들고, 거리로 나가 판에 대고 스프레이를 뿌리면 작품이 완성됩니다. 뱅크시의 가장 오래된 작업 방식이자, 최근까지 고수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초기에 이 스탠실 작업은 많은 조롱을 받았습니다. 애초에 그라피티는 불법이기 때문에, 빠르게 작업해야하는 순간 속에서 본인의 그림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탠실 기법은 현장에서 그림을 처음부터 그리는 것이 아닌, 미리 만들어둔 종이판에 대고 뿌리면 그만입니다. 정확하고 빠르게 그리는 것이 중요한 그래피티 세계에서, 도구를 활용해 일종의 반칙을 한 셈입니다. 하지만 뱅크시는 스탠실 기법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같은 시간 동안 다른 작가들보다 더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에 뱅크시는 영국 거리 곳곳을 자신의 작품으로 수놓을 수 있었습니다.
2) 도둑전시
루브르나 오르세 등 권위 있는 미술관에 가서 직접 그린 그림을 걸고, 도망치듯 나오는 전시 방식입니다. 미술관에 작품을 걸 공간의 작품 분위기를 확인하고 제작에 들어가서, 전시관의 액자들이나, 캡션을 미리 확인한 후 그와 비슷하게 제작해, 옆에 걸려있어도 이상한 걸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몰래 전시된 뱅크시의 그림들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2-3주씩 발견되지 않기도 했는, 뱅크시는 이 작업 과정을 촬영해, 직접 본인의 SNS에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유튜브 어법으로 풀면, '루브르에 직접 그린 작품 몰래 걸고 왔습니다' 같은 제목이 붙습니다. 그렇다면 도둑전시는 왜 한 걸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뱅크시가 평소 미술시장을 비판했던 걸 우선 들어보아야 합니다. 뱅크시는 그간, '미술계에서 성공'은 다른 예술계의 성공과 다르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고른 책을 읽고, 직접 고른 음악을 듣고, 직접 고른 공연을 봅니다. 이를 통해서 그 예술가들은 인기를 얻거나, 성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술의 경우엔, 소수의 사람들이 전시를 기획하고, 홍보하고, 작품을 구입합니다. 작품 감상하는 대중은 소수가 큐레이션 한 대로 미술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뱅크시는, 미술관의 관객들이 주체적으로 작품을 감상할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권위 있는 미술관으로 가, 사람들이 의아해할 만한 그림을 전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상주의 그림을 하나 사서, 들판 위에 쓰레기장을 그리거나, 호수 위의 무너져가는 보트를 그리거나, 하는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미술관 측에서는 몇 시간 만에 발견하고 작품을 떼는 경우도 있었지만, 3주가 되도록 눈치조차 못 챈 미술관도 있었습니다. 사실 뱅크시의 거의 모든 작업은 불법입니다. 스탠실을 활용한 그라피티도, 도둑전시도, 아트테러도. 모두 불법입니다. 때문에 뱅크시는 익명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뱅크시는 왜, 불편한 삶을 감수하며 불법적인 예술활동을 이어가는 걸까요? 뱅크시가 불법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저항’입니다. 이는, 기존 미술계의 체제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관습, 권력화된 제도, 전쟁의 참상, 소비자 위에 군림하는 자본주의, 상업주의와 결탁한 미술계 등 기득권의 모든 행태를 포함합니다. 그런데 뱅크시는 상업 전시를 진행하기도 하고, 상업성의 끝인 미술경매에 작품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뱅크시가 막 유명세를 타던 시기인 2000년대 초반에는 꽤 전시를 많이 진행했었습니다. 당시 같이 그라피티를 하던 동료들과 함께 진행을 했고, 동료들 모두 뱅크시의 신분을 지켜주었습니다. 인기를 얻은 후에는 뉴욕에서도 전시를 진행했는데. 당시엔 뱅크시가 뉴욕에서 지명수배자였기 때문에 더 비밀리에 준비를 했었다고 합니다. 경매의 경우에는 뱅크시가 고용한 대리인을 통해 이뤄집니다. 뱅크시가 직접 작성한 보증서와 작품이 경매에 부쳐지는데. 예술의 상업성을 비판했던 인물이 미술시장에 작품을 내놓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전시, 경매라는 것이 예술가에겐 꼭 필요한데, 뱅크시는 익명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이를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뱅크시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기성체제, 자본주의, 미술시장에 대한 비난을 작품으로 선보인 뱅크시는 본인 작업을 그들의 돈통에 넣었습니다. 불법을 감수하며 저항정신을 표현해 왔는데, 저항하던 대상에게 그 결과물을 판 셈입니다.
대표작품과 작품설명
이 작업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에서 2003년 선보인 첫 도둑전시 작업입니다. 그림과 액자, 캡션까지 완벽하게 테이트 미술관에 걸린 다른 작품과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접착제가 마르면서 두 시간 3030분 만에 작품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본 경비원이 다른 경비원에게 알리면서 발각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뱅크시가 향한 곳은, 미국 뉴욕에 있는 대표적인 현대미술관 모마 MoMA였습니다.MoMA였습니다. 이곳 3층에는 앤디 워홀의 <32개의 캠밸 수프 통조림>이 걸려있었습니다. 뱅크시는 그 옆에 테스코 벨류 토마토 크림수프를 그린 <수프 캔 할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호기롭게 5분 동안 관람객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뱅크시가 자서전에 쓴 말은 이러합니다. “관람객이 파도처럼 몰려와서 작품을 쳐다보고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떠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진정한 현대미술가가 된 느낌이었다.” 작품은 무려 6일간 전시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영국 대영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이곳에서는 미술품뿐만 아니라 많은 역사적 유물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뱅크시는 돌에 마트 카트를 밀고 쇼핑하러 가는 원시인의 모습을 새깁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캡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갔습니다.. 캡션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뱅크시무스 막시무스라는 이름으로 영국 남동부 지역에 상당한 작품을 만든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유형의 작품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대다수는 벽에 그린 그림의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열성적인 시 공무원에 의해 파괴된다.”
어쨌든, 도둑전시에 대해 미술관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었습니다. 미술관의 권위를 비판하고자 몰래 걸어둔 작품이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는 등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낸 건, 뱅크시의 예술성이 그만큼 크다는 걸 오히려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뱅크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면??
https://www.instagram.com/banks
뱅크시가 뉴욕에서 지명수배자가 되다??
이에 뱅크시는 이렇게 맞받아칩니다. 우리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그라피티가 아니라, 도둑전시가 아니라, 바로 ’ 기업의 광고’다.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상품을 강요하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갖 광고로 도배하는 기업이야말로 진정한 ‘공공기물 파괴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뱅크시는 이를 ‘브랜달리즘'이라고 표현합니다.
뱅크시에 따르면 브랜달리즘은 특정기업 광고나 로고 등을 공공시설에 진열해 미관을 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뱅크시는 그들이 먼저 시작한 싸움에 자신은 그저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것뿐이라고.. 뱅크시에게 있어 그라피티는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기업을 비롯한 기득권들과 대결할 최선이자, 유일한 무기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뱅크시는 본인의 작업을 합법적인 영역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광고는 합법적인 공간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게시되지만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강요되고 있습니다. 반면, 뱅크시의 작품들은 불법적인 공간에 불법적으로 게시되곤 하지만 사람들이 열광하고 보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공공의 목적에 어긋난 행위를 한 걸까요?
이런 고민을 통해 뱅크시의 작업이 예술이 된다고도 볼 수 있고, 뱅크시가 범죄자가 아닌 예술가가 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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