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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현대미술

대규모 공공 예술 프로젝트로 유명한 프랑스 예술가 "JR" 그의 메세지를 듣다!

by 갖고싶은예술 2023. 5. 9.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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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R은 대규모 공공 예술 설치 및 사회 참여 프로젝트로 유명한 프랑스 예술가이자 사진작가입니다.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은 종종 소외된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전 세계 공공장소의 넓은 표면에 붙여 넣는 것입니다. JR의 작업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예술을 통해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프랑스 예술가 JR은 누구이며, 그의 시그니쳐 작품의 주제 및 의미하는 바와 주요 작품들, 제작방법 그리고 몇몇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예술가로서의 생각을 알아보겠습니다!

    Who is JR?

    JR은 1983년 2월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대규모 주택 프로젝트로 유명한 파리 북동쪽에 위치한 교외 Les Bosquets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동네 벽에서 본 그래피티에 매료되어 어린 나이에 자신의 그라피티를 시작했습니다. JR의 부모는 예술과 사진에 대한 그의 관심을 격려했고, 그는 17세에 첫 카메라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라피티 예술과 주변 사람 및 장소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에 대한 JR의 관심은 결국 그를 파리의 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에서 공부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인 ‘Jean-René’의 이니셜인 JR을 작가명으로 사용하였고, JR은 스스로를 ‘photograffeur’라고 소개하곤 하는데 이는 ‘photographer(사진작가)’와 ‘graffeur(프랑스어로 그라피티 아티스트를 뜻하는 용어)’의 합성어로 그의 작품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공부를 마친 후 JR은 사진과 거리 예술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초기 작업에는 파리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대형 초상화를 촬영하고 붙여 넣는 작업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과 그의 작품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빠르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소외된 공동체에서 성장한 JR의 어린 시절 경험은 그의 예술적 비전과 사회 변화를 위한 도구로 예술을 사용하려는 그의 열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작업은 종종 사회에서 간과되거나 무시되는 사람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파리의 거리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여러 공공 장소에서 흑백의 대형 사진 이미지를 게시하면서 유명해진 그는 거리야 말로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라고 언급하며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JR은 공적인 성격이 강한 대규모 설치 작업과 사회적 메시지를 지닌 장편 다큐멘터리 제작 등으로 2018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JR
    JR

    JR의 시그니쳐 스타일

    그는 종종 소외된 지역 사회에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건물, 기차 또는 선적 컨테이너와 같은 넓은 표면에 붙여 넣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종종 이민, 빈곤, 갈등과 같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다루며, 그의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으로 개인의 대형 초상화를 찍어 전 세계 공공 장소에 붙여 넣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소외된 지역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 사이에 일체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JR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로스앤젤레스의 현대 미술관, 런던의 테이트 모던 등 전 세계의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2018년에는 예술을 혁신적으로 활용하여 사회 변화를 촉진한 공로로 권위 있는 TED Prize를 수상했습니다. 전반적으로 JR의 작업은 대담함과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그것이 전시되는 공공장소에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특징입니다

    "갈등도 유쾌하게"…예술 플랫폼이 된 작가 JR 

    예술 플랫폼이 된 작가 JR 

    작품제작과 의미

    JR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전 세계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초대해서 공동 소유권을 만들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프로젝트 시작부터 140여 개국에서 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참여 예술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파리, 뉴욕, 홍콩, 리우데자네이루 등 전 세계 도시에서 전시되었습니다."Inside Out" 외에도 JR은 이민, 빈곤, 갈등과 같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수많은 다른 대규모 공공 예술 설치 및 사회 참여 프로젝트를 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위해 지역 공무원 및 지역 사회 구성원과 협력하고, 때로는 법적 문제에 직면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논의합니다. 각 프로젝트에 관련된 특정 비용과 사람의 수는 다를 수 있지만 JR은 종종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에 액세스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그의 프로젝트는 공공장소에서 무료로 경험하고 시청자 사이의 유대감과 참여를 촉진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JR의 작업에 관련된 비용과 인원수는 협업, 커뮤니티 참여, 사회 및 정치적 문제에 대한 깊은 헌신을 강조하는 그의 창작 과정의 한 측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JR은 자신의 작업과 예술을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

    2020년, JR은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이하 NGV, National Gallery of Victoria)에서도 라는 초대형 설치 작업을 선보이며 호주의 심각한 환경 문제에 대한 이슈를 다루었습니다. NGV의 상징적인 장소인 그롤로 에퀴셋 가든 Grollo Equiset Garden에 설치된 는 뉴사우스웨일스 New South Wales의 달링 강(Darling River)의 쇠퇴를 여실히 보여주는 거대한 작품이 이며, 관개 시설, 기후 변화, 가뭄 등 물 부족으로 인한 달링 강의 생태학적 문제에 전 세계의 관심을 촉구하는 심도 깊은 작업이었습니다.  달링 강은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수로였지만 관개 시설로 인해 물이 과도하게 할당되고, 농약 유출로 인한 수질 오염, 장기간 지속된 가뭄으로 인해 급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가뭄 기간에는 강이 거의 흐르지 않았을 정도여서 이후 강우량이 증가하여 유량이 다소 개선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염분 함량이 높고 수질이 떨어지며 주변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Darling River
    Darling River

    스테인드글라스의 거대한 초상화들은 JR이 빅토리아 주와 뉴사우스웨일스 주에 인접한 선레이 시아 Sunraysia 농업 지역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들을 바탕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전 세계 농부들이 처한 곤경, 토착민 또는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과 다국적 농업 기업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자극을 받아 시작된 이 작품은 존재마저 희미해져 가는 달링 강의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생태학적 변화가 인간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예고한 바 있습니다.  2007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를 이루는 긴 벽에 같은 직업을 가진 양국 시민의 초상 사진을 둘씩 짝지어 붙였고, 2008년 시작한 ‘여자들이 영웅이다’(Women are Heroes)프로젝트에서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끌어안고 관대하게 세상을 지탱하는 여성의 얼굴을 브라질 촌락과 대양을 건너는 배에 입혔습니다. 비일상적 크기로 확대돼 노동과 삶의 공간 전면을 점령한 보통 사람들의 클로즈업 흑백사진은 “여기 인간이 있다”라고 웅변했고, 지역사회의 맥락과 만나 풍성한 메시지를 생성했습니다. 이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을 취하도록 영감을 주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JR의 작업은 사회 정의, 인권,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예술의 힘에 대한 그의 깊은 헌신을 반영합니다.

     

    Installation view of homily to country 2020
    Installation view of homily to country 2020

    인터뷰를 통해서 그의 예술세계를 엿보다.

    전반적으로 JR의 인터뷰는 그의 창작 과정, 사회 정의에 대한 깊은 헌신, 예술의 변혁적 힘에 대한 믿음에 대한 통찰력을 담고 있습니다.

    Q: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공중으로 떠오르는 자세를 자주 취하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 대한 오마주입니까?

    A: 점프할 수 있는 한 뛰어보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때가 올 테니까. 카메라와의 놀이이기도 하고 보는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다지 깊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은 아닙니다.

    Q: 당신에게 도시의 외벽은 당신의 전시장이고 캔버스인데, 벽에 관해서라면 세계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서울에서 고작 이틀을 보냈지만 거리의 벽과 도시 전경에서 받은 인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건물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먼저입니다. 한 도시 혹은 구역 전체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와 흐름이 중요하며, 멕시코-미국 국경에 설치한 "키키토"의 모델은 장벽 옆 언덕에 사는 어린아이였습니다. 만약 아이의 사진이 서울 한복판에 설치됐다면 모델도 사진의 의미도 달랐을 것입니다. 서울을 다시 방문한다면 건축물보다 사람들의 흐름부터 주의 깊게 보고 싶습니다. 내 작품의 깊이감은 조형적 밀도와 층위보다 작품과 사람들이 마주쳐 만드는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생깁니다.

    Q: 작품의 다수가 거대한 규모라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습니다. 스케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각 프로젝트의 적절한 사이즈는 어떻게 결정합니까?

    A: 작품의 크기는 맥락에 따라 완전히 상대적입니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는 건물들이 아담해서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사무실의 벽만 한 사진도 지나치게 커 보입니다. 반면 서울이나 파리, 뉴욕에 설치한다면 광고 이미지와 경쟁해서 눈에 띄어야 합니다.

    Q: 영화에서 정유공장의 설치작품을 본 출근길 직원이 “예술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겠죠. 맞죠?”라고 한 말에 동의합니까?

    A: 매우 훌륭한 예술의 정의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확신하지도 않았습니다. “맞죠?”라고 질문했습니다.

    Q: 1인 초상 사진의 경우 28mm 렌즈를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활동 초기 소유한 유일한 렌즈여서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28mm로 찍은 얼굴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있어서입니까?

    A: 초창기에 내가 가진 유일한 렌즈이기도 했고 나를 피사체에게 무척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들어줍니다. 나는 정규 미술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작업을 해나가는 동시에 방법론을 만듭니다. 지금은 여전히 인물 사진에서는 주로 단초점렌즈를 쓰지만 벽에 대형 작업을 할 때면 멀리 떨어져서 사람을 찍어야 합니다. 근거리에서 찍으면 대상의 왜곡이 생겨서 벽에 설치된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야를 교란하게 되니까. 그래서 카메라는 멀리 설치하고 리모컨과 모니터용 아이패드를 씁니다. 그렇게 피사체 가까이에서 커뮤니케이션하면 원하는 포즈를 얻어내면서도 실루엣은 왜곡되지 않습니다.

    Q: 흑백은 현대영화에서 비현실, 추상, 판타지를 의미하곤 합니다. 블랙 앤드 화이트를 선택하고 고집하는 미학적 이유가 있습니까?

    A: 초기에는 돈이 없어서 흑백을 택했지만, 거리에 붙일 사진을 컬러로 인화하려면 흑백보다 비싸서, 인화된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종이에 복사한 흑백 이미지도 썼습니다. 경제적 이유가 먼저였고 나중에는 거리에 범람하는 컬러 광고 이미지와 차별화하는 데 흑백이 유효했기 때문에 미학적 이유가 출발점은 아니었지만 작품이 축적되면서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Q: 초기 스트리트 아트 활동에서는 서명을 남겼는데 지금은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우리는 작가의 이름을 모른 채 스트리트 아트를 봅니다. 사람들이 모두 내 인스타그램을 구독하는 건 아니며, 한편 작품에 호기심이 생겼다면 인터넷에 키워드와 주소를 넣어 아티스트를 검색해볼 수 있습니다. 저 사진의 작가를 나는 모르지만 원하면 물어볼 수 있다. 광고는 반대다. 무엇을 사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낱낱이 분명히 지시하며 어떤 선택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예술은 작품과의 거리를 포함해 우리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나 역시 그 점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Q: 오늘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셀카를 찍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셀카 문화를 제일 매끈한 모습만 전시하는 자기도취적 행태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라면 디지털 시대의 자화상 사진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법합니다.

    A: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법이기도 하고, “내가 이곳에 존재했다”고 보여주며 애정의 화답을 기다리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Q: 나라와 문화에 따라 트럭 옆구리에서 출력되는 본인의 대형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를 것 같은데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A: 만국 공통으로 “와우!” 나는 마법 트럭이라고 부르는데, 그저 얼굴을 크게 보여줌으로써 얼마나 많은 미소를 창조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브라질에 1대, 미국에 2대, 유럽에 1대, 일본에 1대의 마법 트럭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인들도 즐겁게 반응했을 뿐 아니라 외벽에 많이 붙였습니다. 한 일본 작가는 지진과 쓰나미 재해를 입은 후쿠시마 지역을 돌며 같은 작업을 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는 나 없이도 확장되고 있으며, 이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서 보냅니다. 우리 스튜디오는 그들이 보낸 파일을 메일로 받아 무료로 인화한 다음 찍은 사람들에게 돌려보냅니다. 스스로 ‘인사이드 아웃’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흑백사진이고 특정 브랜드나 단체와 연관되지 않는다는 원칙만 지키면 수용합니다.

    Q: 예전부터 영화에 관심이 깊었습니까? 당신의 단짝을 제외하고 좋아하는 프랑스 감독이 있다면?

    A: 늘 관심은 있었지만 시네마를 잘 알지는 못했습니다. 처음 나를 시네마와 연결해준 영화는 13살 때 본 마티외 카소비츠의 "증오"였습니다. 나 자신이 영화의 배경인 파리 변두리에서 자란 이유도 있지만 언제나 텔레비전을 통해 보통 컬러영화만 보았던 터라 다른 심도와 영화적 코드를 구사한 흑백 작품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최초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Q:상업적 영화나 광고의 배경에 당신의 작품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습니까?

    A:소송을 합니다. 자동차, 보험회사 등 여러 차례 승소해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웃음) 우리 변호사는 훌륭합니다. 그가 기업에 전화를 걸어 내용증명을 보내겠다고 하면, 그들은 우리에겐 35명의 변호사가 있고 20년은 재판을 끌어갈 돈이 있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광고 기획단계에서 받은 메일과 우리가 보낸 거절 메일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르는 척 촬영을 진행한 것입니다. 때로 나는 법을 넘어 작품을 설치하고, 그러고는 그 이미지의 불법적 이용에 대해 고소하는 셈이니 패러독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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