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

한국의 모노크롬(단색화) 회화의 대표 작가, 숯의 화가 '이배'

by 갖고싶은예술 2023. 10. 7.

목차

    반응형

    한국 단색화의 대표 작가 이배는 숯을 이용하여, 숯이 가지고 있는 순환과 나눔 등의 관념 위에 작가의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작품 활동을 합니다. 이배 작가는 누구이며, 그에게 숯이란, 작품활동과 다양한 Q&A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배 작가 그는 누구인가?

    미술교사를 하다가 프랑스로 떠난지 30여년 만에 2018년 프랑스 문화예술 훈장 기사장을 받은 이배 작가. 예술의 중심지인 프랑스에서 그것도 한국인이 예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30여년의 시간동안 이배 작가는 고뇌하고 또 고뇌 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숯'입니다. '붓질'은 향토적인 재료 '숯'을 기반으로 동양철학에 기초한 작품 정신을 엿볼수 있습니다.

    숯의 화가 '이배'
    숯의 화가 '이배'

    이배 작가에게 숯이란?

    숯가루를 안료와 함께 섞어서 붓질을 하는 과정은 마치 서예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작가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하는 역동성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무가 타면 숯이라는 정수가 남습니다. 어쩌면 세상 모든 사물의 마지막 상징적 모습이자 죽은 듯 보여도 생명력을 머금은 존재라고 할수 있습니다. 숯의 순수함,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이있는 인식이 작가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가 작품의 주재료로 숯을 선택하게 된 것에는 어떤 예술적 의미가 있지 않다고 합니다. 파리에 가서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큰 캔버스에 작업을 했는데 손가락 만한 물감 하나에도 2만원씩 하는 가격을 감당하기에 벅찼다고 합니다. 고민끝에 500원정도 하는 숯 하나를 샀는데 일주일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이배는 그 일주일이 너무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화실에서 숯으로 작업을 하던 초기에 유명 평론가를 만날일이 있었다고 해요. 그가 분명 왜 숯을 사용하는지 물어볼거라 일주일동안 그 대답을 고민해야 했답니다. (여담)

    이배 작가의 작품활동 '어떻게 만드느냐' 그것이 곧 작품의 메시지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작품들을 만들기 위해 이배 작가는 파리에서도 한국에서도 아침 9시부터 저녁7시까지 일반 직장인들이 일하는 것 처럼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며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예술가라고 하면 모름지기 자유로울것 같고, 영감이 떠오를때 휘리릭 그림을 그릴것만 같은데, 이런 성실한 모습이 있다는 것에 의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렇게 규칙적인 작품창작활동이 그에게 중요한 걸까요.?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그는 '예술의 3요건'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 에스프리(영감과 정신)
    • 애티튜드(태도와 자세) - 작가의 감성적인 영역
    • 프로세스(과정과 방법) - 지속적으로 쌓아가고 축적되어 가는 논리적인 영역

    이배 작가의 작품들
    이배 작가의 작품들
    이배 작가의 작품들
    이배 작가의 작품들

    하지만 지금 현대에 와서는 '균일함' 과 '일정함'이 매우 중요하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영감이 잘 떠오를때만 좋은 작품을 만들기 보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에서 작가의 아이덴티티를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비해 지금은 방법론의 영역인 프로세스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배 작가는 결과 자체보다 '어떻게 만드느냐'에 해당하는 그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균일하고 일정한 프로세스(과정과 방법)가 충실하면 결과가 저절로 퀄리티를 갖추게 된다. 그것이 작가의 시스템이고 그것이 곧 작가의 메시지입니다. 이배 작가는 번뜩이는 영감보다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자신만의 프로세스를 만들었기에 지금의 탄탄한 작품들을 우리가 만날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은 파도처럼 계속 변화하잖아요. 하지만 초월성, 절대성은 변화하지 않죠. 인간은 현실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 절대성과 순수성을 붙들지 않으면 절망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어요. 초월성과 현실성을 만나게 하는 것이 모든 예술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A

    Q: 예술가로 긴 시간을 살아오며 작가로서 큰 변화를 맞이한 순간를 꼽자면 언제를 회상하시나요?

    A: 큰 순간은 몇 번이나 있었죠. 그중 하나가 청도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미술 실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미술 특기생으로 고등학교에 가게 된 일이죠. 그 덕분에 미술 대학에도 가고요. 하나를 더 꼽자면 중학교 미술 선생을 하다가 그만두고 프랑스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일이겠죠. 굉장히 무모한 선택이었는데 돌이켜보면 큰 순간이 된 것 같아요.

    Q: 1989년 여름에 처음 파리를 방문했고, 이듬해에 파리로 완전히 거처를 옮기셨죠. 처음 그곳에 간 1989년 여름, 파리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보시나요?

    A: 저녁에 파리에 도착해 다음 날 아침 몽파르나스 거리에 갔어요. 그곳에 발자크 조각이 있는데 조각 정면에 위치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잖아요. 세계의 모든 인종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뒤섞여 거리를 걷고, 서로가 즐겁게 껴안고 인사하는 모습, 신호등이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자기 길을 걷는 사람들, 그런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예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Q: 마흔다섯 살 때까지 작품을 전혀 판매하지 못하셨다고요. 10여 년 넘게 작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에 조급하지는 않으셨나요? 나는 언제쯤 이름을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갈증은 없었나요?

    A: 늘 그 생각을 하며 살았죠. 빨리 인정받고 싶었어요. 인정받고 싶지 않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거고, 애를 써야 했죠. 그럼에도 내가 잘한 일 중 하나는 마흔다섯 살에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전시를 하게 됐는데 그때까지 평균 2백 호, 2~3m 크기의 작품만 그렸어요. 동료 작가나 화랑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죠. 이렇게 크고, 시커먼 그림은 안 팔린다. 좀 작은 그림을 그려보라는 조언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나에게는 꿈이 있었어요. ‘나는 미술관에 전시하기 위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누가 시켜준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 생각을 계속 했죠. 그게 나를 지탱하는 자존감이기도 했고요. 지금도 여전히 미술관 전시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갤러리 전시를 할 때도 미술관 전시처럼 해보려고 애쓰고요.

    Q: 스스로 ‘나는 미술관 전시를 하는 작가’라고 정체성을 부여했지만 막상 상황은 그렇지 못했죠. 이상과 현실의 격차 속에서 외롭지 않으셨습니까?

    A: 외롭지는 않았어요. 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파리에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관광 가이드를 할 수도 있고 방법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참고 계속 작업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한국에서 학교 선생으로 지내며 영위한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파리로 온 거잖아요. 안정된 생활을 스스로 끊어낸 만큼 뿌리쳐야겠다 싶었죠. 당시 지하철 표가 한국 돈으로 8백원 정도 했는데, 그 돈이 없어서 집에서 화실까지 매일 1시간 반을 걸었어요. 그런데도 그 시간이 참 좋았어요. 억울하지도, 힘들지도 않고요. 생각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걸으니까. 나는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이보다 상황이 어려워도 견딜 수 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생각했죠. 그게 아니라면 다시 돌아가면 되는데, 다시 돌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Q: 작가로서의 위기는 언제였다고 보시나요?

    A: 지금이죠. 지금. 작가는 매일이 위기예요. 그중에서도 지금이 가장 큰 위기죠. 그림이 팔리는 순간이 위기예요.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과거에 잘한 것이 다 없어져요. 무너져 없어지고, 잊힙니다. 순식간에 파멸로 가는 거예요. 끝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한데 인생이,삶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Q: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야겠다고 생각하시나요?

    A: 현실에 이름을 알리려 애쓰지 말아야 하고,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드는가’ 계속 자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한데요. 저 사람이 뭐 하고 있는지 금방 알아요.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죠. 수많은 사람이 무너지는 걸 제가 봤으니까. 외부 요인으로 인한 두려움보다 작가 스스로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두려운 거죠. 작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어려워요. 나 역시 노력하고 애씁니다.

    Q: 예술가로서 그리는 이상향은 어떤 모습인가요?

    A: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예술가는 마티스예요. 당대에 피카소, 브라크, 샤갈, 달리도 있었지만, 말년에 가장 훌륭한 작품을 남긴 건 마티스예요. 마티스는 예술에서 품위를, 격을 아주 높이 여겼어요. 프랑스 생폴드방스에 가면 로사리오 성당(chapelle du rosaire)이 있어요. 마티스는 말년에 이 작은 성당에 스테인드글라스 및 벽화 작업을 했어요. 그것도 목탄으로. 잘 그려진 그림이라 할 수는 없는데 격이 높아요.

    Q: 미술에서 격을 이야기할 때, 그 안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건가요?

    A: 인격이죠. 한 사람의 품위. 우리 옛 선비는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했어요. 높은 인격은 학문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자기를 초월성의 경지에 올리는 것이죠. 현실의 존재를 높은 초월성의 정체성과 만나게 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자기를 드높이는 거예요. 높은 인격을 추구하는 사람이 하는 말과 글은 높은 격을 띠고,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심과 경외감을 갖게 해요. 품위는 동양 미술이 가진 최고의 경지라 할 수 있죠.

    Q: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예술가의 삶이 굉장히 어렵지 않습니까?

    A: 초점을 맞춰야죠. 삶 전체를 그렇게 맞춰가야 하는 거예요,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이 세계 안에서 예술가로 천착하기보다는 삶이 예술을 통해 확장되고 넓어지기를 꿈꾸는 것이지요.

    Q: 가장 먼 계획이 궁금합니다.

    A: 미술관에서 큰 전시회를 하는 게 가장 먼 계획이에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5~6년 동안 매일 아침 기도하고 있어요. 어떤 미술관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크기의 작품을어떤 배열로 전시를 해야겠다고 구체적으로 매일 생각합니다. 세부 사항은 늘 바뀌지만 계속 꿈꾸는 거예요. 될 때까지. 수년간 이생각을 하다 보니 어떨 때는 안 해도 괜찮다, 이렇게 꿈꾸는 것도 행복하다 할 정도로 골몰하고 있는데, 그래도 하고 싶어요.

    Q: 인생을 사는 방식이 곧 예술가의 삶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그런데 삶은 엉망인데 작품은 인정받는 경우도 더러 있지 않나요?

    A: 예술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려고 과장한 부분이 있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모두 처절하고, 치열하고, 절실했어요. 예술가로서 저는 제 작품이 시간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월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지닌 작품. 예술가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고요.

    Q: 작가님에게 허물이라는 건 무엇이죠?

    A: 딱딱한 껍데기 같은 거죠. 지난 세월 동안 쌓인 보수적인 가치관, 나를 지속시키는 권위 의식, 나에 대해 설정된 존재감. 사실 이 모든 것은 다 필요 없어요. 그보다 조금 더 자기를 정제하고, 정화시키고, 새롭게 보려고 노력하지요.

    Q: 선생님의 작품은 음악, 패션, 건축 등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어요. 생동감, 리듬감이란 건 결국 영역을 넘어 느껴지는 걸까요?

    A: 그렇다면 감사한 일이죠. 그냥 있는 대로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을 자꾸 해요. 나를 끊임없이 흔들어 깨워야 한다. 좋은 해결책 중 하나가 지속성, 일관성이에요. 다섯 번쯤 해서 안 되면 열 번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스무 번 하고, 사십 번 하고 계속 해요. 그림을 그릴 때 그런 생각을 해요. 나는 실패하려고 그린다, 그림을 버리러 화실에 간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나를 그 안에 계속 넣으려고 해요. 실제로는 실패인지 성공인지 몰라요. 완전히 버렸다고 생각하고 방치해둔 그림이 어느 날 좋아 보일 때도 있고요.

    Q: 문자 그대로 많이 버리기도 하시나요?

    A: 많이 버려요. 삶이란 게 그렇듯 우연히 되는 것 빼곤, 되는 일이 잘 없어요. 될 때까지 해야 해요. 백 장 그려서 두세 장이라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온다면, 거기에 충만감이 있다면 나머지 98장은 다 버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죠.

    Q: 숯 작업을 30년 동안 하셨는데 여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어요?

    A: 전시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특히 그래요. 페로탕 전시 끝나자마자 조현화랑에서 열릴 전시를 준비 중인데,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해보려고 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나의 내면으로 가장 깊이 들어가보고 싶다는 열망과 목표가 있어요. 전시를 오픈하는 날, 어쩌면 준비하는 기간들이 나의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가려고 애쓰는 시간이었다, 그런 기억이 나에게 남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숯의 작가로 알려졌지만 여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작품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그리고 그것이 나의 세계성 안에 연결되어 있는 새로운 작품이었으면, 그런 고민들로 가득 차 있어요.

    Q: 해왔던 것을 늘 전복시키려면 굉장히 소모적일 것 같아요.

    A: 그렇죠. 존경하는 대가들은 늘 그런 것 같아요. 2019년, 허션미술관에 이우환 선생님 개인전을 보러 가서 깜짝 놀랄 만큼 감명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그분의 작품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이배는 젊은 시절 7년 동안 이우환의 조수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작품 일색이었죠. 너무나 새로웠어요. 여든 중반의 대가가 완전히 청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선생은 어쩜 이렇게 머리가 말랑말랑할까. 열등감을 느낄 정도였죠. 아, 이게 바로 대가구나. 

     


    포스팅 목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