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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조각

미술계의 외로운 늑대 "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by 갖고싶은예술 2023. 5. 2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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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가, "루이즈 부르주아" 는 근현대 미술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계 미국인 예술가입니다. 그녀의 어린시절 상처와 트라우마를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가며 스스로를 미술로 치유한 그녀에 유년시절에 삶과 기억들, 주요 작품과 작품설명 그리고 자신을 대면해 살아온 작가들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과 생애

    부르주아는 1911년 12월 25일 파리, 태피스트리를 수선하고 판매하는 아버지 루이 부르주아(Louis Bourgeois)와 어머니 조세핀 부르주아(Josephine Bourgeois)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현명하고 포용력 있는 성격인 데 반해, 아버지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었습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어린 부르주아에게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엄마 조세핀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스페인 독감에 걸렸고, 사춘기 소녀였던 부르주아는 어머니를 간병하며 공방 일을 도왔으나, 어머니는 1932년 9월 14일 사망했습니다.어린 시절부터 정서적 불안감을 느꼈던 부르주아수학의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체계에 끌려 파리 소르본대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곧 수학적 관념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이론적 구조일 뿐임을 깨닫고 예술의 세계에 들어서기로 결심합니다. 부르주아는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 에콜 뒤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몽마르트 및 몽파르나스에 있는 화가들의 스튜디오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시절에 그녀를 가르쳤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는 부르주아에게 3차원에 대한 관념을 심어주어 훗날 조각가가 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1938년 부르주아는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와 결혼해 뉴욕으로 이주했습니다. 1940년대 말부터 기하학의 영향이 엿보이는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한 그녀는 1949년 뉴욕의 페리도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그녀의 조각은 재료가 다양해지고 주제가 과감해진 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쳐, 70년대에는 급속도로 부상한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더욱 강렬하고 파격적인 인상을 띠게 됐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정점에 이른 1974년 작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한때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수년간 정신분석에 몰두하기도 했던 루이즈 부르주아. 그녀는 자신의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에 매달렸고, 불안한 감정을 작품이라는 물리적 대상으로 구현했습니다. 초기 그녀의 작품에는 이러한 감정이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드러나 관객을 당혹시켰습니다. 작가는 미술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과거의 분노와 상처에서 서서히 벗어났습니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아버지의 외도와 이를 묵인한 어머니를 지켜봐 온 작가의 작품은 초기에는 날이 서 있지만 노년에는 기조가 바뀐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쓰고 작품 활동에 몰두했으며 70여 년에 걸쳐 끝없이 시도하길 멈추지 않은 작가. 자신의 어두운 상처와 두려움, 불안으로부터 마침내 부드럽고 고요한 ‘치유’의 세상을 빚어낸 사람, 루이즈 부르주아. 그녀는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자신의 과거와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했고, 그로써 자신과 화해하는 평온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작품세계

    그녀가 70여 년에 걸쳐 만든 작품은 실로 엄청납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동물과 곤충, 자연물에서 특정 신체 부위(성기나 가슴, 눈 등)나 얼굴, 초상화, 모성과 가족, 음악과 나선 등 무수한 모티브를 변형하며 작품에 등장시켰습니다. 또한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재료와 도구로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여러 판화 기법(아쿠아 틴트, 드라이포인트, 에칭, 리소그래피 등)을 사용해 인쇄 작업을 했고, 드로잉과 조형, 그리고 대형 설치 작업에 이르도록, 9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예술은 그녀와 한 몸이 되어 그녀를 살게 했습니다. 그녀는 작품에서 부모에 대한 기억을 반복하여 표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녀의 어머니를 ‘거미’로 나타냈고, 아버지에게 느꼈던 폭력과 분노는 방 크기의 재현작 ‘아버지의 파괴’로 드러냈습니다 . 출산 이후 부적절한 감정에 사로잡힌 루이즈 부르주아는 가족에 대해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탯줄이 잘리지 않은 채 몸 밖으로 나와 있는 아기와 여성을 표현한 작품, 집을 가면처럼 눌러쓴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배경에 맞서는 그녀의 독자적 행보

    그런데 이러한 예술적 표현은 그녀가 활동하던 당시 미국에서는 낯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술에는 흔히 당대 주목을 받는 흐름이나 표현 방식이 있고, 많은 작가들은 이 흐름에 올라타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며 생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르주아가 활동할 무렵 미국에서는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이 대세였습니다. 추상표현주의는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쉽게 말해 추상화라고 이해할 수 있고, 이들 작품에서는 작가 개인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미니멀리즘 예술은 아예 제목을 ‘무제’로 하는 등, 작가를 더욱 숨기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부르주아는 아주 직설적으로 삶에서 이야기를 끌어와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30년 간 단 8번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에 익숙해져 있는 미술계 사람들에게 작품이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1. 루이스 부르주아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기 유행하던 사조(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와 관계 없는 예술을 했습니다.

    2. 예술가가 사조를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되지만,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미술사에 살아 남았습니다.

    3.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었던 부르주아는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풀어 놓아 사조와 관계없이 관객과 소통에 성공했습니다.

     

    Louise Bourgeois - MAMAN 작품의 숨겨진 이야기

    마망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표작품

    1."마망"

    마망은 거대한 거미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루이즈 부르주아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그녀에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있었으며,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가정교사와 긴 시간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그런 아버지를 용인했던 어머니에 대한 감정 또한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루이즈 부르주아는 성장하면서 애착을 요구하는 관계에서 힘겨움을 느꼈으며, 부모, 형제자매,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모순적(양가적) 감정으로 어려웠다고 합니다. 부르주아는 '마망'의 모티브가 자신의 어머니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미는 나의 어머니께 바치는 송시입니다. 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하는 "마망"은 철판 조각을 이어 붙여 거대한 거미다리를 만들고 몸통을 실타래같이 만든 다음 아랫배에 철망을 두르고 그 안에 대리석으로 만든 둥글고 거대한 알을 넣은 작품이며. 누가 봐도 알을 품은 거미입니다. 부르주아는 “알을 품은 암컷 거미를 통해 나의 어머니가 지닌 모성을 형상화한 것”이라며 “어머니는 거미처럼 실로 태피스트리(tapestry)를 짜던 사람”이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녀는 또 이 작품은 나의 어머니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으며, 아버지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 어머니에 대한 연대감 등 유년의 기억을 불러와 자기 알을 보호하려는 모성과 경외감, 두려움을 거대한 크기로 표현했고, 상대적으로 가늘고 약한 다리는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표현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알을 품고 독을 잔뜩 올린 채 웅크리고 서 있는 거미의 모습에서 작가의 내면이 유감없이 표현된 명작입니다. 그녀의 작품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유년시절의 불행했던 가족사 즉, 아버지의 불륜, 어머니의 죽음, 언니의 문란한 생활, 남동생의 새디스트 성향 등은 훗날 성장해 작가의 길로 나아가 유년의 기억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유년시절의 기억과 욕망에 대해 “나는 나의 기억들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것은 나의 사생활이다.”"당신이 자신의 기억을 향해 가고 있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향수는 생산적이지 못하다. 만약, 당신의 기억들이 당신에게로 온다면 그것들은 조각을 위한 씨앗이 된다”라고 말했다. 부르주아에게 기억은 아픈 상처였습니다. 단순히 장엄한 크기의 조각이 아니라 모성을 간직한 여성의 강한 생명력의 표상입니다. 부르주아는 어떻게 이런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 어린 시절에 받았던 내면의 상처는 커가면서 그녀에게 더할 수 없는 분노의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예술가의 삶은 곧 예술이 되었습니다!

     

     

    1999년, 강철과 대리석. 마망
    1999년, 강철과 대리석. 마망

    2.아버지의 파괴

    부르주아는 악몽 같은 유년기의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의 파괴"에 대한 작업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에 아버지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랑하고 과장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랑을 늘어놓을수록 우리는 점점 더 위축돼갔습니다. 갑자기 무서운 긴장감이 느껴졌고, 우리 셋-오빠, 언니, 어머니-은 모두 아버지를 붙잡고 식탁 위로 끌어당겨 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잡아 뜯었습니다. 우리는 매우 성공적으로 아버지를 물어뜯고, 먹어 치웠습니다. 부르주아의 남편 골드워터가 사망한 다음해인 1974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이 야기한 무시무시한 범죄의 분위기가 압도적었습니다. 짐승의 핏빛 내장과 엉덩이, 허리와 다리 형상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신체 부분들이 아버지의 사지이고, 이 설치 작업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가족 만찬에서 온가족이 아버지를 잡아먹는 장면을 암시합니다. 끔찍한 근친살육의 비극은 가부장적인 권력에 대한 부르주아와 가족의 반란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파괴
    아버지의 파괴

    3.유칼립투스

    루이즈 부르주아의 "유칼립투스의 향기"(2021, 국제 갤러리) 전에는 작가가 생애 마지막 10여 년간 작업한 판화 작품과 조형물이 전시되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에 머무르며 병든 어머니를 보살폈던 젊은 시절의 부르주아는 당시 유칼립투스를 약용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억으로 작가에게 유칼립투스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또한 스튜디오를 환기시키기 위해 유칼립투스를 태우곤 했던 작가의 습관을 떠올리면 작가에게 유칼립투스는 실질적이면서 상징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칼립투스의 온화한 선을 그리기까지, 자신의 기억과 내면을 순전히 바라보기까지 그녀가 거쳤을 불면의 밤은 얼마나 길고 깊었을까 싶습니다. 그것은 추억을 자극하여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내는 매개체이자 '미술의 치유적 기능에 대한 은유'로 작동합니다

     

    유칼립투스의 향기
    유칼립투스의 향기

    4. "내면으로 #4(the smell of eucalyptus)"

    같은 상을 뒤집어 찍은 듯 두 개의 작품이 한 몸처럼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결코 같지 않고 다르지만 다르다고만 할 수 없는 미묘한 간극, 그 사이에 관객을 머물게 했습니다. 유사성과 동일함 사이, 가깝지만 멀기도 한 거리를 사유하는 사이 짝을 이룬다 해도 본질적으로 혼자인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Turning Inwards Set #4 (The Smell of Eucalyptus
    "Turning Inwards Set #4 (The Smell of Eucalyptus

    5. 거울

    역시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98년 작 ‘거울(The mirror)’을 볼 수 있습니다. 깨지기 쉬운 연약한 심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내면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거울'. 국제갤러리 제공
    '거울'. 국제갤러리 제공

    6."작은 소녀"

    1982년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1946~89)는 부르주아의 인물 사진을 여러 컷 찍었습니다. 그 가운데 1968년에 제작한 "작은 소녀"(Fillett)의 거대한 남근을 옆구리에 끼고 웃는 사진은 부르주아를 진짜 그녀답게 찍은 것으로, 오묘한 웃음 속에 그녀의 예술, 사상, 철학이 모두 녹아 있는 명품입니다. 부르주아에게 남근은 여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극도의 섬세한 물건이라는 의미에서 "작은 소녀"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남성의 취약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 1982년, 젤라틴 실버 프린트, 50.8x40.6cm, Photoⓒ 1982 the Estate of Robert Mapplethorpe 6. , 1968년, 플라스터 위에 라텍스
    로버트 메이플소프, , 1982년, 젤라틴 실버 프린트, 50.8x40.6cm, Photoⓒ 1982 the Estate of Robert Mapplethorpe 6. , 1968년, 플라스터 위에 라텍스

    7."꽃"

    내 꽃들은 부치지 않을 편지들입니다. 그 꽃들은 내가 좋은 딸이자 누나였고, 또한 좋은 아내이자 엄마였음을 보여줍니다. 꽃들은 다른 여인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경솔함을 용서합니다. 꽃들은 나를 유기했던 어머니를 용서합니다. 또한 병석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살려내지 못한 나의 죄를 용서합니다. 꽃들은 속죄의 편지입니다. 꽃들은 재생과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이 꽃들은 살아있습니다. 그들은 감각과 감성으로 충만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연결돼 원만하게 움직이는 동맥, 정맥, 내부 기관들로 이루어진 살아 숨 쉬는 구조물입니다. 그들의 근원은 혈액, 내장, 정액, 양수입니다. 그들의 욕망과 임신, 성(性)에 대해 말합니다. 꽃들은 내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도와줍니다. 현재와 과거를 잇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합니다.

     

    2009년, 종이에 구아슈
    2009년, 종이에 구아슈

    그녀의 목소리

     


    "예술은 온전한 정신을 지켜줍니다.” "시도하고 시도하고… 그러다 갑자기 거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자신의 작품 세계)이 그런 식으로 될지 몰랐어요. 그것은 미스터리랍니다.” "내가 찾는 것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디어도 아니에요. 내가 재창조하고자 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그것은 원하면서 주고 싶기도 하고, 파괴하고 싶기도 한 감정이에요. 그러한 힘에 대한 확인(identification)입니다.” “내 모든 작품은 내 삶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매일 매일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리거나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당신이 힘든 과거와 타협할 수 없다면, 그 때부터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내 작품 세계에는 외로움과 잔인함이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잔인함을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는 없기 때문”

    그녀의 마지막

    98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새로운 기법과 시도로 누구보다 활발하고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그녀에게 예술은 고통스러운 삶에 대처하며 깨끗한 정신을 지켜 내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꽃"은 마치 부르주아 자신의 피로 그린 내장기관 같기도 하고 펄펄 끓는 청춘의 용솟음 같기도 합니다. 100년을 바라보는 그 긴 인고(忍苦)의 세월을 붉은색 하나와 붓질 몇 번으로 정리한 유언이었습니다. 부르주아는 그렇게 붉고 붉은 마음으로 세상에 꽃 피우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자신을 대면해 살아남은 작가들

    미술사에는 이렇게 자신의 깊은 내면을 만나고 그것을 솔직한 목소리로 풀어 놓아 생존한 작가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질병으로 가족 구성원 절반을 떠나보내고 평생 불안에 시달렸던 에드바르트 뭉크는 자신의 공포를 대면해 세기에 남을 작품 ‘절규’를 남겼습니다. 또 세상의 모든 대상을 점박이로 만들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쿠마사 야요이, 사고를 겪고 평생 고통 속에 살았지만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 또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혹은 개인으로서 외면받는 목소리를 직설적인 퍼포먼스로 풀어낸 이불 작가 도 있습니다.

    에드바르트 뭉크

    에드바르트 뭉그 의 절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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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마사 야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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